두 나라가 국경을 정하다가 너무 복잡해서 일부 지역의 선을 제대로 잇지 못한 곳이 있습니다.
벨기에와 네덜란드 사이에 있는 바를러 지역입니다.
1843년 두 나라는 국경을 공식적으로 정했지만, 바를러만큼은 땅의 소유 관계가 너무 복잡했습니다. 결국 하나의 깔끔한 국경선 대신 작은 영토들이 퍼즐처럼 뒤섞인 모습이 남게 되었습니다.
도대체 이곳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1. 벨기에와 네덜란드는 왜 국경을 새로 정해야 했을까?
오늘날 벨기에와 네덜란드는 서로 다른 나라입니다. 하지만 과거에는 지금과 상황이 달랐습니다.
1815년 나폴레옹 전쟁이 끝난 뒤 유럽의 여러 나라는 국경과 영토를 다시 정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오늘날의 벨기에와 네덜란드 지역은 하나의 네덜란드 왕국에 포함되었습니다.
하지만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1830년 벨기에에서 혁명이 일어났고, 벨기에는 네덜란드에서 독립을 선언했습니다. 이후 벨기에는 독립 국가가 되었고 두 나라 사이에는 새로운 문제가 생겼습니다.
"벨기에와 네덜란드의 정확한 경계는 어디까지일까?"
두 나라가 하나였을 때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던 지역도 이제는 어느 나라에 속하는지 정확하게 정해야 했습니다.
결국 두 나라는 오랜 협상과 측량을 통해 국경을 정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1843년 마스트리흐트 조약을 통해 대부분의 국경을 공식적으로 확정했습니다.
하지만 문제가 되는 장소가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바를러였습니다.
바를러에서는 단순히 마을 가운데 선 하나를 그어 한쪽은 벨기에, 다른 한쪽은 네덜란드라고 정하기 어려웠습니다.
그 이유는 훨씬 오래전인 중세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에는 오늘날처럼 국가가 땅을 깔끔하게 나누는 방식이 아니었습니다. 한 지역 안에서도 땅마다 서로 다른 영주가 권리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바를러 역시 이런 곳이었습니다.
어떤 땅은 브라반트 공작과 관련되어 있었고, 바로 옆의 다른 땅은 브레다의 영주와 관련되어 있었습니다.
문제는 이런 땅들이 한쪽에 모여 있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이 사람의 땅, 바로 옆에는 저 사람의 땅이 있는 식으로 여러 조각이 섞여 있었습니다.
그리고 수백 년 뒤 이 오래된 토지 관계가 벨기에와 네덜란드의 국경을 정할 때 다시 문제가 된 것입니다.
2.너무 복잡해서 하나의 국경선을 만들지 못했다
보통 우리가 생각하는 국경은 하나의 선입니다.
지도에서 선을 기준으로 왼쪽은 A국, 오른쪽은 B국처럼 나뉩니다.
하지만 바를러에서는 이런 방법을 사용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중세부터 이어진 땅의 권리가 작은 조각 단위로 복잡하게 얽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1843년 벨기에와 네덜란드가 국경을 정할 당시에도 바를러의 모든 땅을 하나의 연속된 국경선으로 나누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 지역에서는 일반적인 선 대신 각각의 땅이 어느 나라에 속하는지를 따로 기록하는 방식이 사용되었습니다.
그 결과 아주 특이한 국경이 만들어졌습니다.
네덜란드 땅 가운데 작은 벨기에 영토가 여러 개 생겼고, 일부 벨기에 영토 안에는 다시 네덜란드 영토가 들어갔습니다.
현재 바를러 지역에는 벨기에의 바를러헤르토흐와 네덜란드의 바를러나사우가 복잡하게 얽혀 있습니다.
바를러헤르토흐 공식 자료에서는 이 지역에 벨기에 월경지 22개와 네덜란드 월경지 8개 등 총 30개의 월경지가 있다고 설명합니다.
쉽게 생각하면 지도에 색종이를 잘게 찢어서 붙여 놓은 것과 비슷합니다.
큰 네덜란드 땅 위에 작은 벨기에 조각들이 있고, 그 벨기에 조각 안에 다시 네덜란드 조각이 들어가 있는 곳도 있습니다.
그래서 '지도에 구멍이 생겼다'는 표현이 잘 어울립니다.
물론 실제 지도에 아무것도 표시되지 않은 빈 구멍이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한 나라의 영토 안에 다른 나라의 영토가 섬처럼 들어가 있는 모습을 쉽게 표현한 말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이런 복잡한 국경이 옛날 지도 속에만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오늘날에도 실제 국경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3. 수백 년 전 땅의 흔적이 지금도 길바닥에 남아 있다
바를러에 직접 가면 국경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도로와 인도에는 하얀 십자가 표시가 이어져 있습니다. 이 표시가 벨기에와 네덜란드의 국경을 보여줍니다.
선을 한 번 넘으면 나라가 바뀝니다.
조금 걷다가 다시 선을 만나면 원래 나라로 돌아올 수도 있습니다.
심지어 국경선이 상점이나 집 안을 통과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건물에서는 어느 나라의 주소를 사용할지 정해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건물의 주 출입문이 어느 나라에 있는지를 기준으로 주소를 정합니다.
그래서 같은 거리에 있는 건물이라도 하나는 벨기에 주소를 사용하고 바로 옆 건물은 네덜란드 주소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주민들이 국경선을 넘을 때마다 여권을 보여주는 것은 아닙니다.
벨기에와 네덜란드는 유럽에서 국경 이동이 자유로운 지역에 함께 속해 있기 때문에 평소에는 자유롭게 오갈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두 나라의 차이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주소와 행정 기관이 다르고 세금이나 일부 규칙에도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닥에 그려진 작은 국경선이 실제 생활에서도 의미를 가집니다.
바를러의 독특한 모습은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도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특히 20세기에 들어 두 나라는 오래된 자료를 이용하고 정확한 측량을 진행하면서 복잡했던 국경의 위치를 더욱 분명하게 정리했습니다. 1995년에는 바를러 지역의 국경도 공식적으로 확정되었습니다.
결국 수백 년 전에 만들어진 땅의 소유 관계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현대적인 측량을 통해 정확한 국가의 경계로 남게 된 것입니다.
오늘날 바를러를 방문하는 사람들은 바닥에 표시된 선을 따라 걸으며 두 나라를 계속 오갈 수 있습니다.
평범한 길바닥처럼 보이지만 그 선을 따라가 보면 중세 시대부터 현대까지 이어진 유럽의 역사가 숨어 있습니다.
바를러의 국경이 복잡해진 것은 누군가 지도를 잘못 그렸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 시작은 수백 년 전 중세 시대의 복잡한 토지 관계였습니다.
1830년 벨기에가 네덜란드에서 독립한 뒤 두 나라는 국경을 정해야 했지만, 바를러에는 서로 다른 권리를 가진 땅들이 너무 복잡하게 섞여 있었습니다.
결국 하나의 깔끔한 선으로 나누지 못했고, 작은 땅들의 소속을 하나씩 구분하는 방식이 사용되었습니다.
그 결과 오늘날까지도 네덜란드 안에 벨기에가 있고, 그 벨기에 땅 안에 다시 네덜란드가 있는 독특한 지도가 남았습니다.
지도에서 이상하게 보이는 작은 '구멍'들은 사실 수백 년 전 사람들이 나누었던 땅의 흔적인 셈입니다.
그리고 그 흔적은 지금도 바를러의 도로와 건물 사이에서 실제 국경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